Press Releases 관계의 예술이 변치 않는 의료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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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한승현 로완 대표이사] 의학의 발전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 중심에는 항상 새로운 도구의 등장이 있었다. 19세기 르네 라에네크의 청진기가 의사의 귀를 환자의 가슴팍에 밀착시켰고, 20세기 MRI와 CT가 신체의 내부를 투명하게 드러냈다면, 21세기의 디지털 헬스케어는 환자의 일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빛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진보하여 진단의 정밀도가 무한히 높아진다 해도, 의료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관계다.

치유는 단순히 수치를 정상으로 돌리는 물리적 복원을 넘어, 환자가 자신의 고통을 해석하고 치료에 동참하는 심리적 여정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임상 현장에서 치료 성패를 가르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어려운 변수는 바로 치료 순응도(Patient Adherence)다. 이는 환자가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약을 제때 복용하거나 처방된 운동과 식이요법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는지를 뜻하는 지표다. 아무리 혁신적인 약물과 정교한 알고리즘이 존재해도 환자가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기술은 힘을 잃는다.

심리학에서는 이 난제의 해답을 작업 동맹(Working Alliance)에서 찾는다. 이는 의료진과 환자가 서로를 신뢰하며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유대감을 뜻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환자가 느끼는 이 관계의 밀도가 높을수록 치료 지침을 따르는 의지가 강해지며, 그 결과 예후가 긍정적으로 상승한다는 점이다. 결국 디지털 헬스케어의 진정한 역할은 데이터를 쌓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데이터를 매개로 의료진과 환자의 작업 동맹을 얼마나 견고하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헬스케어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를 일으키는 강력한 촉매제가 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은 피그말리온의 간절한 기대처럼, 인간은 타인의 긍정적인 기대와 신뢰를 받을 때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한다. 1960년대 하버드 대학교의 로버트 로젠탈 교수는 교사의 기대가 학생의 지능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으로 입증해 보였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이 포착하는 환자의 호전 징후를 바탕으로 의료진이 "지표가 이만큼 나아졌습니다. 정말 잘하고 계십니다"라는 구체적 확신을 건넬 때, 또는 “더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지표가 떨어지면 치매걸릴 확률이 높아집니다” 라는 경고가 있을때 환자는 단순히 처방을 받는 수동적 존재를 넘어 스스로를 고치는 치유의 주체로 변화한다. 데이터라는 객관적 근거가 의료진의 따뜻한 관심과 결합할 때, 환자의 뇌와 신체는 비로소 회복과 치료를 위한 최적의 상태로 반응한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성공 경험은 환자 내면에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강력한 심리적 자산을 구축한다. 심리학자 알버트 반두라가 정립한 이 개념은 스스로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뜻한다. 이러한 심리적 기제는 환자가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고 예방과 치료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만들며, 이는 치료 순응도를 높이고 신체적 회복 속도를 비약적으로 앞당기는 결정적 촉매제가 된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환자가 매일매일 겪는 작은 성취를 시각화된 데이터로 증명해 준다. 의료진은 이 데이터를 거울삼아 환자가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도록 돕고, 환자는 이 병을 통제하고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을 얻는다.

결국 의료는 과학이라는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하되, 관계라는 예술로 완성되는 숭고한 과정이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정교한 기술력은 이 예술을 뒷받침하는 가장 세밀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데이터라는 실이 의료진의 전문적인 해석과 인간적인 공감이라는 손길을 거쳐 환자의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그물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기술 그 이상의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가 존재하는 시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인간만이 줄 수 있는 신뢰의 밀도는 더욱 귀해질 것이다. 우리가 디지털 헬스케어의 미래를 설계하며 끊임없이 관계의 본질을 궁금해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술의 끝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하며, 그 길 위에서 의료라는 이름의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한승현 로완 대표이사

출처 : 시사저널e(https://www.sisajournal-e.com)